근데 아직 실망은 이르다. 좀 더 확인해야할 게 남았다. Nordic EdTech Forum(N8)이라는 곳은 노르딕 에듀테크의 글로벌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N8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이유는 8개국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노르딕국가에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포함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 포럼은 이들 국가에 속한 대표적 기업들의 설립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서 매년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모임이다. 지속적인 혁신과 투자 등이 포럼에서 다뤄지고 있는 주요 주제다.
에듀테크 차원에서 우리가 주변국가와 하고 있는 교류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물론 개별 기업간의 교류는 법인 설립부터, 제휴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간 교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중국 혹은 일본과 에듀테크관련 공동 포럼을 연다거나 학술대회를 공유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이 그런 이벤트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정기적인 모임은 내가 아는한 없다.
에듀테크의 국가간 연합이 필요한 이유는 다차원적으로 나눠져 있는 에듀테크 시장의 복잡성 때문이다. 에듀테크는 단순히 기술로만 정의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교육학이라는 인문학적인 요소도 포함된다. 대상은 유아부터 평생교육까지 나눠져 있고 여기에 각종 플랫폼, 도구, 콘텐츠의 분야도 각각으로 쪼개져 있다. 기업은 어떤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어떤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고 국가별 에듀테크 기업을 다 모아도 이들 구성이 완벽해지긴 어렵다. 대개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징을 반영하여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일본, 중국, 대만정도는 환경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교육문화권에 속해 있다. 에듀테크의 발전 상황도 비슷하고 기술 수준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연합체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나라의 공통된 특징(중국상황은 정확히 잘 모른다는 걸 전제하겠다.)이 있기 때문이다. 통합환경을 무척 선호한다는 것이다. 개별 시스템간의 구성을 통해 서비스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에듀테크는 서비스의 복잡성으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표준이 많은 분야다. 표준이 많다는 뜻은 각종 도구와 콘텐츠간의 연결성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우리 나라에 표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나 기관이 많지 않다는 것은 그 필요성이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국내 기업들간의 교류조차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기업간 시스템과 시스템, 시스템과 콘텐츠를 연결해야할 이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LTI나 API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간 교류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버에 가깝다. 시장의 필요성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은 상태의 교류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해외 국가에 대한 교류는 정보와 기술의 교류라기 보다는 수출의 관점에서 주로 다뤄진다. 우리가 에듀테크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교류를 넓혀야 하는 이유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수출 성과와 국제적인 위상은 그 뒤에 따라 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에 대한 필요성은 수출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것과 놓치고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이 점은 노르딕 N8 사례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xEdu 사례를 보자. 핀란드에서 출발했고 현재까지 6백만 파운드 (대략 80억규모) 정도의 에듀테크 기업에 투자유치 실적을 거둔 업체다. 단지 투자만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 이후 코칭, 멘토링, 개발환경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큐베이팅과는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두차례 선정된 업체에 대해 3개월간 집중적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직 준비가 안된 스타트업은 별도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향후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통과한 스타트업은 K12, 대학 등을 포함한 100개가 넘는 글로벌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게되고 결과적으로 더 빠른 속도로 더 큰 규모로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그들이 에듀테크 기업을 도와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에듀테크를 위한 전문 엑셀러레이터라는 것이다. 인지하다시피 IT 전반적인 인큐베이팅을 도와주는 기업은 우리에게도 다수 존재한다. 몇몇 국내 에듀테크 기업들은 이미 인큐베이터를 통해 투자유치를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에듀테크 혹은 이러닝이 하나의 산업분야로 인큐베이팅 대상이 된 적은 없었다. 엑셀러레이터는 커녕 전문 인큐베이팅 기업조차 흔하지 않다.
왜 우리와는 달리 노르딕은 에듀테크를 위한 별도의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 필요했을까? 에듀테크가 이렇게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다만 노르딕 국가의 공교육의 성과와 에듀테크 산업에 대한 노르딕 국가의 관심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여러 정황상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왜냐면 현재 노르딕 국가의 교육적 위상은 노르딕 에듀테크 기업들의 위상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공교육의 성과는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들의 성과지 에듀테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와 노르딕 국가의 차이를 가르는 부분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2000년초부터 누구보다 일찍 이 분야를 개척해왔던 한국 이러닝이 뒤늦게 출발한 노르딕 국가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봐야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은 누구나 한꼭지 정도의 대답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부, 기업, 교육관련 관계자 등등 각각의 입장이 다를 뿐이다. 지금 당장 대답들을 하나로 모으고 한 방향으로라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라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가장 많은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교육 분야가 아닐까 싶다. 상용 보다 오픈소스 교육플랫폼이 더 많이 활성화되어 있고 각종 오픈소스 도구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로 많다. 짐작컨대 이 분야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뭔가 다른 동기가 더 크게 작동되는 것처럼 보인다. 에듀테크가 다른 분야와 다르게 다뤄져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된 “갈라파고스화된 국내 에듀테크 시장”과 “공교육과 에듀테크의 불일치”는 어딘가 모르게 서로 닮아 있는 듯 보인다. 교육이 지닌 고유의 가치나 이 분야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부심과 공명심을 빼고 보면 에듀테크는 그저 그런 IT의 한 분야일 뿐이다. 공교육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에듀테크는 핀테크나 헬스케어보다 투자가치가 높을리도 없으니 무시 당하는게 당연했다.
그래서 노르딕 에듀테크의 사례는 우리에겐 백설공주에 나오는 여왕의 거울과 같은 존재다. 우리가 최고가 아님을 깨닫는 것에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출처 : 쑥갓선생